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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김덕령의 죽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1-16

조회 13,606



의병장 김덕령의 죽음.....

선조실록 1596. 8. 19.(甲寅)
김덕령을 3차례 형장으로 신문하였다.  형장 30대를
쳤으나 이전의 진술과 차이가 없었다.
추국청에서 건의 하였다. "김덕령을 3차례나 형장으로
신문하였으나 자복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형장을 더
쳐야겠으나 숨이 겨우 붙어서 이름도 대지 못합니다.
만약 곧바로 죽어버리게 되면 죄상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므로 내일 고문할 것을 청합니다." 임금이 대답
하였다.  "건의한 대로 하라."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1596년 8월 21일 다시 형장으로 신문하였고 결국
8월23일에는 형장을 맞고 죽었습니다.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을 역모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덮어
씌워서 결국 형장을 쳐서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원수 권율의 문서 한 통만 확인해 보아도 김덕령의
무죄를 알수 있건만 "죄인들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과 고향을 떠나
스스로 의병을 모으고 나라를 위해서 왜적들과 싸우던
장수 하나를 이처럼 비참하게 죽이는 것 입니다.

당시 우의정이었던 정탁 대감은 의병장 김덕령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김덕령옥사계]를 올리며 29살의 젊고
아까운 장수를 살리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소용이 없었으며
김덕령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왜적들만 모두들 기뻐하면서
서로 축하하였다고 하니 적을 이롭게 한 이는 과연 누구입니까?

남도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그가 죄없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김덕령의 일을 교훈 삼아 용맹하고 힘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더 이상 의병(義兵)이라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선조 임금은 명종 임금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5일만에
16살의 어린 나이로 세자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교육도
받지 못한채 조선 제14대 왕위에 오른 중종 임금의
후비 창빈 안씨의 서손자 하성군 이균 입니다.

선조 임금은 사람을 쓰고 다스리는 특징이 충신들은 의심
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배들을 중용 하는 것으로
가장 고전적인 인사 원칙인 의인물용 용인물의 (疑人勿用
用人勿疑), 즉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말라." 고 하는 것은 참고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리더의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올바른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우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공적이 있는데도 상을 주지않고,
죄없는 자에게 벌을 주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남 위에 서는 자는 겸허해야 한다는 노자의 말처럼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상필벌을 명확하게 하려면 사심을
버리고 리더 스스로의 감정을 우선시 해서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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