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선조수정실록 1598년 12월 이보다 앞서 수길(秀吉)이 죽은 다음 가강(德川家康)이 권세를 잡고 여러 장수들의 처자들을 데려다가 인질로 삼았으며, 그들의 군사를 거두어 가지고 돌아갔다. 울산, 사천, 순천 세 방면의 왜적들이 모두 바다를 건너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이렇게 임진왜란은 일본의 탐욕으로 인하여 쓸데없이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이웃나라 조선의 많은 백성들이 살육을 당하며 전 국토를 피폐하게 만들고 끝이 났습니다. 종전 후 동북아 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의 책임을 토요토미 히데요시 에게 전가 시키며 당시 침략의 전초기지였던 히젠 나고야 성을 파괴했고 이키섬의 카츠모토 성 역시 이곳을 통과 하던 조선 통신사에게 보여주며 임진왜란이 자신과는 무관하고 조선을 침략할 뜻이 없다고 밝히며 국교를 정상화 하자고 조릅니다. (이민웅 지음 이순신 평전에서 발췌)
그러나 10만명이 넘는 무고한 백성들을 잡아가서 도자기와 인쇄, 제지 등 각분야의 기술자들을 활용하여 상공업 발달을 이루어내며 일본의 사회와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국부를 마련 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편 명나라는 임진왜란에 참전함으로서 조선의 위기를 상국으로서 구원해 주는 명분과 전쟁터가 명나라로 넘어 오지 않게 하기 위한 실리를 얻었으나 막대한 군비의 지출로 인한 재정파탄은 결국 망국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전쟁터가 된 당사자 조선은 전 국토가 유린 당한 것은 물론, 전쟁과 기아로 인한 인구의 격감 등으로 실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조정은 건재했으며 붕당에 의해 정권 교체도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정권은 명, 청 교체기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불러 일으키며 국력을 회복 하는데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습니다. 조선 후기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3세기 후에는 다시 일본에게 나라를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임진왜란의 교훈을 망각하고 해상 방위를 소홀히 하면 필연적으로 국난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배워야 할 것 입니다. 국난 극복의 지혜는 전 국민이 일치 단결하여 강인하게 맞서 싸우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는 교훈을 실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국제경제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서로 소통 하고 배려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분열된 사회, 이념적 갈등, 양극화 된 사회구조로는 위기를 극복할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높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도울 때 대한민국의 힘은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껏 잘해왔던 것처럼 다시 뛸 수 있습니다.
글 이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