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다 죽었습니다.....
1597년 2월 26일. 길을 떠났는데, 가는 도중에 남녀노소 모든 백성들이 에워싸고 울부짖으며 "사또, 어디로 가시오. 이제 우리들은 다 죽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조카 정랑(正郞) 이분(李芬)의 이충무공 행록(行錄)]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정유년 2월26일 한산도에서 포박되어 서울로 압송된 이순신은 3월 4일 서울에 도착하여 하옥 되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이 적을 놓아 주었다고 탄핵하면서 잡아오게 하였는데, 자신의 직책을 대신하는 후임 통제사 원균에게 군량 9천9백여섬, 화약 4천 근, 총 4백 자루를 인계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마음씀씀이 입니다. 아무리 좋지 못한 상황이라도 먼저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제시해 주는 귀한 메세지 입니다.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 속에서도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근무 태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리더로서, 나라를 지키는 지도자로서, 적을 눈앞에 둔 현장의 장수로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헌신했던 모든 것들을 잘 사용 하도록 무언의 격려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장터에 있었던 조선수군이나 백성들은 다 압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이 나라가 어찌 되었는지를... 그래서 어디로 가시느냐고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고 깊은 근심에 쌓입니다. 실제로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은 모두 궤멸에 가까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차기 전투를 위해서 아끼며 모아두었던 군비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리하여 누가 함대를 이끌고 나가더라도 이길 수 있는 조건을 준비하여 두었다는 치밀한 군사경영에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쌀 한톨도 보내주지 않는 조정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자급자족으로 말입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회사 상황이 어렵다고 우왕좌왕 하며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 보다는 평소의 신념으로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자세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