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3월 4일 (己未). 비로소 맑다. 들으니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송도(松都 : 개성)에
이르렀다가 북쪽(함경도) 길로 갔던 적들이 설한령
(雪寒嶺)을 넘었다는 말을 듣고는 평안도로 되돌아
갔다고 하였다. 통분함을 이길 수 없었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조선을 돕겠다고 압록강을 건너온 이여송은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뒤에 의욕을 잃고 개성으로, 평양으로
후퇴합니다. 이에 유성룡 대감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왜적을 물리쳐 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더우기 함경도까지 갔던 가토 기요마사가 임해군,
순화군을 포로로 잡아 앞세우고 설한령을 넘었다고
하니 이여송은 더욱 더 움츠러들었습니다. 설한령은
평안북도 강계군과 함경남도 장진군 사이에 있는
높은 고개 입니다.
조선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 시키며 왜적들과 강화
협상을 하고 지원군이면서도 전시작전권은 명나라가
행사 하겠다며 허락없이 행주산성 전투를 했다고
비난합니다. 어찌 통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할 때 사대교린이라는
외교정책으로 시작된 이웃나라들과의 관계가 임진
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서 어떻게 변질되어 갔으며
어떻게 국가의 존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구한말의 상황을 생각해 보고, 지금의 우리를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스스로 힘을 기르고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경제가 힘이 있을 때, 건전한 기업활동으로
국가가 부강할 때, 튼튼한 자주국방은 글로벌 네트워크
안에서 상호간에 협력적이면서도 전략적으로 평화적인
생존의 기반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글 이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