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수사 이계훈(李繼勛)의 죽음.....
1595년 3월 17일(庚寅). 비가 그치는 듯 하였다. 아들 면(葂)과 허주(許宙)와 박인영(朴仁英) 등이 돌아갔다. 이날 군량을 계산하여 표지를 붙여 놓았다. 충청우후(元裕男)가 보고하기를, 충청수사 이계훈 (李繼勛)이 불을 내고 나서 물에 투신하여 죽었으며, 군관과 격군 모두 140여 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후략).....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새로 부임한 충청수사가 왜 배에 불을 내고 투신을 했을까? 여러 기록들을 찾아보았으나 비변사에서 침몰 사건을 보고한 것과 유성룡 대감이 장계를 통해 보고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난중일기에도 3월 16일과 17일 두번에 걸쳐 "참으로 놀랄 일이다 ." 하고 그쳤습니다. 그 때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한산도에 계셨을 때이고 강화협상 중이기는 하나 전쟁중 인데 뒷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새로 부임하였으나 충청수영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고 나갈까에 대한 책임과 의무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관습처럼 내려오는 충청수영의 부정부패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랬을까? 그러면 혼자 투신을 하지 왜 140여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희생 시켰을까 정말 알 수 없습니다. 의구심만 증폭 됩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 한 줄의 사실에서 우리가 성찰해 보아야 하는 것은 그동안 미처리된 업무들은 없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미결된 사항들은 없었는지, 미루고 쌓아놓은 일들은 없었는지 챙겨보는 것입니다.
일을 하려면 제 때에 하라, 제대로 하라, 제대로 시켜라, 등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리더십 교육을 많이 받습니다만 정말 우리는 이렇게 실천 하고 있는지요? 원칙없는 생각과 처신으로 일상 업무를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리더는 언제나 좋은 환경에 놓여지는 것도 아니며 마음에 맞는 부하들로만 팀을 꾸리는 것도 아니므로 늘 불확실한 상황을 잘 판단하고 철저히 준비하여 진력으로 실행하고 그리고 끝까지 마무리하는 역활을 수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 이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