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 (1598. 4. 3. 丁巳)
경리에게 화살에 독약을 바르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였더니, 그 독약을 만드는 사람이
군사들 속에 와 있지 않다고 하면서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임진왜란은 15세기 동북아 삼국의 화약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명나라의 불랑기포와 조선의 화포 그리고
왜적의 조총이 처음으로 맞대결을 했기 때문이지요.
고려시대 최무선이 개발한 우리의 화약은 중국에 비해
600년 이상이나 늦었으나 그 당시 조선의 화포는 세계
최강의 위력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명군은 평양성 전투에서는 비몽포라고 하는 독가스
무기도 사용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생화학무기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명의 불랑기포에 큰 충격을 받은
왜적들은 조총만으로는 안되겠기에 강화협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비록 수십만명의 군사들을 보내어 전쟁을 대신 치러줄
망정 "기술만은 선뜻 가르쳐줄 수 없다는 명나라 장수의
태도에서, 우리가 무엇을 교훈 삼아야 하겠습니까?
국가의 일급비밀인 화약제조법, 독가스제조법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기술의
중요성을 국익과 함께 자신들의 생존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임진왜란이 화약전쟁으로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깨달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권율 장군은
수차석포를, 변이중은 화차를, 이장손은 비격진천뢰를
개발하여 국제경쟁력 있는 최첨단 무기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5년전에 대마도주가 바친 조총 두자루를
놓고 우왕좌왕한 임금과 조정의 대신들과는 대조적인 모습
이며 조총이 쏠 때마다 맞겠냐는 신립 장군의 교만한 태도
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배우라고 하고 있습니까?
이렇듯 지금의 비지니스에서도 기술은 꼭 무기 개발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요. 비지니스 모델을 비롯하여
상품의 브랜드, 특허권, 지적재산권 등 우리의 기술을
4차산업시대에서도 창의적으로 개발하고 지켜내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 입니다.
심심치 않게 산업스파이 등 국제간의 분쟁도 일어나고
기술자들의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국가는 물론 기업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는 사태를 접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기술은 국력이다, 생존이다." 라는 말이
실감나는 기술혁명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글 이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