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몽진(蒙塵).....
1592년 4월 30일, 이미 밤은 삼경(밤11시- 새벽 1시경)이 되어 대가가 출발 하려고 하였지만 호위군은 없었다. 비는 세차게 내렸고 밤은 매우 어두웠다. 사경(새벽 1~ 3시)에 비로서 궁문을 나와 상은 말을 탔고 수행 관원은 순서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날 낮에 벽제에 도착을 하였다. 저녁에 임진강을 건너려 하니 강물이 불어 범람하였다. 나룻배는 겨우 5~6척 이었다. 대소 관리들이 서로 먼저 건너려고 다투니 상하가 문란하고 마부와 말이 흩어졌다. 밤새도록 건너가지 못했다. (後略)
- [기재 박동량의 기재사초 하권] - 에서 발췌
임진왜란 전후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사초(史草)로서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기재(寄齋) 박동량(朴東亮)의 일기에서 나온 선조의 몽진(먼지를 뒤집어쓰며 피난하는) 이야기 입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후퇴하거나 피난을 가는 경우는 전진을 위한 2보 후퇴 1보 전진을 목적으로 부하들과 함께 싸우는 것을 전제로 임시로 피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선조의 경우는 자신의 위험을 피하고 가족들의 안위를 위하여 한양을 버리고 명나라로 귀부 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의주까지 내달았는데 이것은 리더로서 국가의 수반으로서 국난을 맞이하는 자세가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후세에 까지 두고두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선조의 도덕성 입니다. 아무리 치세를 잘 한다 하여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나 국가 안보에 관한 중요한 정책 결정에 도덕성이 결여된다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기재사초는 선조 실록이 쓰여지고 나면 없애야 하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책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불편했던 선조의 본심을 읽게 되어 리더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리더의 도덕성 문제로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어도 그 기본이 되는 것은 지도자의 도덕성 입니다. 왜 지금 도덕인가 하는 것을 강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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