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손(世孫) 시절부터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척신(戚臣)에게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즉위 초에 맨 먼저 규장각을
세웠던 것이니, 그저 겉으로만 학문을 숭상하고
학문의 도로 다스리는 것처럼 꾸미려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한 것은 이들과 늘 가까이 지내 이들이 나를
좋은 말로 성심껏 인도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정조실록 정조19년(1795년) 3월 10일 - 에서 발췌
규장각이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규장각 각신들이
근무하는 곳으로 조선의 두뇌에 해당 되는 기구
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승정원, 홍문관, 춘추관,
예문관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니까요.
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 역대 임금들이 이순신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사액 현판도 내리고
신도비와 제문을 지어 올리며 이순신을 기리고
흠모하였는데 정조 임금은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여
역사에 남겼습니다.
규장각은 창덕궁의 비원 안에 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부용정과 마주하고 있으며 정조 임금이 규장각
각신들과 더불어 학문과 나랏일을 토론하며, 임금이
내리는 각종 문서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학술서적을
편찬하고 과거 시험 문제도 출제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들은 정조임금이 규장각 각신들에게 명하여 만들어진
이충무공전서에 의해 전해진 것들 입니다. 이순신이
쓴 일기들을 모아서 난중일기로 명명하고 정리해
놓으셨으니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정조 임금께서 규장각을 세우신 이유가 좋은 신하들과
더불어 임금을 좋은 말로 성심껏 인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하니 늘 곁에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마음을 꿰뚫는 진리를
말씀 하고 계십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