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에서 왜적을 무찌른 장계....
통제사 이순신이 급보를 올렸다. "얼마 전 바다 가운데서 싸움을 할 때 우리 군사가 일제히 충통을 쏘아 적의 배를 쳐부수자 적의 시체가 바다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이어서 모두 갈고리로 끌어올려 목을 베지는 못하고 단지 70여 명의 머리만 잘랐습니다. 명나라 군사는 적의 배를 보고는 먼바다로 피해 도망가 버렸기 때문에 적을 한 놈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군사가 적을 잡은 수량을 알게 되자 진(陳)도독이 뱃전에 나와서 발을 구르면서 그 부하들을 욕하여 내쫒는 한편 신 등에 대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이 위협을 가했습니다. 계(季) 유격 또한 데리고 있는 가정(家丁)을 보내서 적의 머리를 요구하기에 신이 5개를 보내주었습니다. 다들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1598년 7월 18일 절이도 해전에서 적선 50여 척을 불태우고 적의 머리 70여 개를 베었으니 이는 조선 수군이 완전히 재기한 해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전투에 참가 하지 않고 멀리서 참관만 한 명나라 장수 진린에게 수습한 적의 수급 중에서 40여개를 주었습니다.
이순신은 갖은 횡포를 부리는 진린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끝까지 포용했습니다. 명목상 그가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만에 하나 진린과 갈등을 겪게 되어 그것이 조.명 사이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한다면 왜적을 섬멸하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순신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는 수모와 굴욕까지도 견뎠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공짜로 되는 일처럼 생각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세상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꼭 건너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굴욕의 강입니다. 한 컵 크기의 그릇에는 한 컵의 물밖에는 담을 수 없습니다. 그 한 컵에 어찌 자존심과 우월감만 담겠습니까?
만약 내 그릇이 한 컵밖에 안 된다면 그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굴욕의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수모의 고갯길에서 주저앉고 만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 입니다. 현실의 수모와 굴욕을 이기고 견뎌낼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