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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2일 그 날.....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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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2일 그 날......

조선 측 기록 - 난중일기 4월 12일
1592년 4월 12일 辛丑.  맑다.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에서 현자, 지자 대포를 쏘아 보았다. 전라
감영의 군관 남한도 살펴보러 갔다. 정오에 동헌
으로 옮겨 앉아 활 10순을 쏘았다. 관아로 나가며
돌계단을 살펴보았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일본 측 기록 - 서정일기 군종 승려 덴케이 일기
일본력 4월 12일(조선력 음력 4월 13일)  맑음.
병선 700여척, 진시(오전 8시)에 대마도 오우라항
(大浦)을 출발 하였다. 같은 날 신시(오후 4시)에
부산에 도착 하였다. 태수(고니시 유키나가)는 
즉시(절영도의) 산기슭 위로 올라갔고, 나 또한
뒤따라갔다. 술시(오후 8시)에 배에 다시 돌아왔다.
-  윤인식 글 [역사 추적 임진왜란]  -  에서 발췌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인 대마도의 오우라항에 가
보았습니다. 지난해 임진왜란 전적지 탐방으로
부산.대마도를 갔을 때 일입니다. 지금은 양식장이 
되어 한가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였지만 430여
년 전에 7년 동안 우리 민족을 괴롭혔던 왜적들이 
조선으로 침략 할 배를 집결시킨 항구라고 생각하니
웬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일 년 동안 배를 만들고 준비하여 부산으로 건너오기
까지 이곳에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자리
입니다. 대마도주 소 요시도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조선에 조총과 정보를 주는 등 온갖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에는 선봉장이 되어 부산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같은 날 우리의 이순신 장군께서는 거북선의 시험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앞으로 닥쳐올 임진왜란에 대비
하였습니다. 조선은 당파 싸움으로 전쟁 준비도 하지 못하고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하는 식민지 사관의 역사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대한 만반의 준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쟁 준비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우선 목적과 수단 방법에서
차원을 달리 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올바른 생각과
좋은 뜻으로 준비를 한다면 반드시 이긴다는 정의를 임진왜란
에서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관군과 의병과 수군이 힘을 합쳐서
침략자 왜적을 몰아낸 정의의 전쟁이자 동북아 국제전쟁을 잘
막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에게 열광하는 것은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자신있게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에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되고 이겨 놓고 싸운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 입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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