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신(尹又新)이 죽었다.....
1594년 6월15일(壬戌). 맑다. 오후에 비가 뿌렸다. 신경환(申景潢)이 영의정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나라를 근심하는 이로 이보다 더할 이가 없을 것이다. 지사(知事) 윤우신(尹又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슬픈 회포를 참을 길 없다. 순천(權俊), 보성(金得光)이 보고하기를, 명나라 총병관(總兵官) 장홍유(張鴻儒)가 중국 배를 타고 1백여 명을 거느리고 바닷길을 거쳐 벌써 진도 벽파정(碧波亭)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바다에서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권율, 행재소에서는 유성룡,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조선의 훌륭한 리더들 덕분에 왜적들은 7년 동안이나 싸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영의정 유성룡의 편지를 보고 감동하는 이순신,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 만은 구국의 일념으로 서로 통하였던 것 입니다. 이보다 더할 이가 없다고 한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의 나라 정세를 보면 국회는 국회대로, 행정 당국은행정 당국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서로 화합하고 소통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조선시대 보다도 더 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좋은 점 보다는 나쁜점, 부끄러운 점만 드러내며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 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나라를 근심하는 이가 있는가 되묻고 싶어집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각 분야의 리더들이 하는 일이 사건의 시말을 해명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더우기 새로운 경제질서를, 관세전쟁을 대처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또한 리더를 따르는 팔로워들도 문제 입니다. 모두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행동 합니다.그리고 리더들을 비난 합니다. 팔로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이 없이는 그 어떤 훌륭한 리더라 할 지라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은 커녕 사회적 갈등이 더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제일 경계했던 것은 200년 동안 뿌리 깊게 박혀있는 무사 안일 주의,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대부들의 개인 이기주의였습니다. 왜적 들과 함께 또 하나의 적을 임진왜란을 통해서 박멸 하고 싶으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가는 것이다. 반상의 차이가 어디에 있느냐.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모두 모여라 그리고 각자의 자리 에서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위대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한 점 의심 없이 믿고 따르도록 명확한 지침과 대책 그리고 장군의 솔선수범으로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 함께 다시 시작합시다.
글 이부경 올림 pklee9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