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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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승전지23 메모리투어 장소3(적진포해전장소)
승전지23 메모리투어(23개 인증 장소): 이순신 장군이 승리로 이끈 23번의 해전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보는 승전지 투어
23번의 승전 중 세 번째 승전은 지금의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앞 바다에서 치러진 적진포해전입니다.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을 치른 다음 날인 1592년 5월 8일(양력 6월 17일)에 승리한 전투가 바로 적진포해전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1592년 5월 10일에 작성한 장계인 ‘옥포파왜병장’에서 적진포해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일 이른 아침에, 진해 땅 고리량(古里梁)에 왜적의 배가 정박해 있다는 보고를 받고 곧 출발하여 안팎의 섬들을 협공하고 수색하면서 저도(猪島)를 지나 고성 땅 적진포(赤珍浦 : 통영군 광도면 적덕동)에 이르니 모두 13척의 왜적의 큰 배와 중간 배들이 바다 어귀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왜적들은 포구 안의 민가들을 분탕질한 뒤에 우리 군사들의 위세를 바라보고는 겁을 내어 산으로 올라가므로, 낙안 군수(申浩)는 그 부통(部統) 소속인 순천 대장 유섭(兪?)과 힘을 합쳐 왜적의 큰 배 1척을, 같은 부통장(部統將)으로 그 고을에 사는 급제 박영남(朴英男)과 보인 김봉수(金鳳壽) 등이 힘을 합쳐 왜적의 큰 배 1척을, 보성 군수(金得光)가 왜적의 큰 배 1척을, 방답 첨사가 왜적의 큰 배 1척을, 그의 부통장으로 귀양살이 중이었던 전 봉사 주몽룡(朱夢龍)이 왜적의 중간 배 1척을, 신의 대솔(代率) 군관인 전 봉사 이설, 송희립 등이 힘을 합쳐 왜적의 큰 배 2척을, 군관 정로위(定虜衛) 이봉수(李鳳壽)가 왜적의 큰 배 1척을, 군관 별시위(別侍衛) 송한련(宋漢連)이 왜적의 중간 배 1척 등을 총과 대포를 쏘아 맞추어 깨뜨려 불태웠습니다. 그런 후에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아침밥을 먹고 쉬게 하였습니다.”
적진포해전의 경우 정확한 장소를 지정하기 어렵기에 경남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에 있는 화당방파제를 인증 장소로 지정하였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스탬프투어의 승전지23 메모리투어 코스에서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 장소명: 적진포해전장소
- 권역: 경남 고성군
- 인증 반경: 100m
- 서브타이틀: 적진포해전(3승)
- 내용
이순신 장군의 세 번째 승전보로 기록된 적진포해전 개요는 다음과 같다.
날짜: 1592년 5월 8일(양력 6월 17일) 이른 아침
결과: 왜군 피해(11척 격침, 2,800여명 사망), 조선군 피해(1명 부상)
장소: 경남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1592년 5월 8일(양력 6월 17일) 전날 옥포와 합포에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은 남포에서 하루를 머무른다. 다음 날 조선의 함대는 적진포에서 함선들을 포구에 매어둔 채 육지에 올라와 약탈을 자행하고 있는 왜군과 마주친다. 왜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전함 13척 중 11척을 잃고, 2800명 이상이 사망한다.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인 '옥포파왜병장'에 따르면 적진포해전 직후에 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이에게 적의 만행을 들은 조선 수군 장수들은 매우 분개하여 적진으로 바로 쳐들어가 왜적을 섬멸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으나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수군이 아직 합류하지 않았고 왜군이 있는 곳의 지형이 판옥선으로 전투하기에 불리한 지형이기에 후일을 도모한다. 적진포해전 장소는 지금의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일대이다. 경상남도가 조성한 이순신 승전길에도 적진포해전 해전 구간(21.8km, 해맞이공원~화당마을)이 포함되어 있다.
◎ 위치: 경남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화당방파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