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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지23 메모리투어 장소8-한산대첩기념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6-03-09

조회 12



제목: 승전지23 메모리투어 장소8(한산대첩기념비)

 

승전지23 메모리투어(23개 인증 장소): 이순신 장군이 승리로 이끈 23번의 해전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보는 승전지 투어

 

23번의 승전 중 여덟 번째 승전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한산대첩입니다. 다른 해전들에 비해 군사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전투로, 해상에서의 포위섬멸전을 이처럼 정교하고 주도면밀하게 선보인 전투는 세계전투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입니다. 한산도대첩의 승전보를 담은 이순신 장군의 장계는 ''''견내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狀)''''인데, 이 장계의 내용은 이충무공전서의 임진장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장계에는 학익진을 펼쳐 일본 주력 함대를 견내량에서 유인해 한산도 앞바다에서 괴멸시킨 과정과 성과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식을 갖춘 공식적인 문서이지만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돌아온 장수가 전투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일텐데 냉정하고 차분하게 써내려간 현장 상황 하나하나에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장계의 내용 중 학익진이 언급되는 내용 일부만을 발췌해 봅니다.

 

견내량의 지형이 매우 좁고, 또 암초가 많아서 판옥전선은 서로 부닥치게 될 것 같아서 싸움하기가 곤란했다. 그리고 왜적은 만약 형세가 불리하게 되면 기슭을 타고 뭍으로 올라갈 것이므로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다. 한산도는 사방으로 헤엄쳐 나갈 길이 없고, 적이 비록 뭍으로 오르더라도 틀림없이 굶어 죽게 될 것이므로 먼저 판옥선 대여섯 척으로 먼저 나온 적을 뒤쫓아서 엄습할 기세를 보이게 하니, 적선들이 일시에 돛을 올려서 쫓아 나오므로 우리 배는 거짓으로 물러나면서 돌아 나오자, 왜적들도 따라 나왔다. 그때야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학익진''''을 펼쳐 일시에 진격하여 각각 지자, 현자, 승자 등의 총통들을 쏘아서 먼저 두세 척을 깨뜨리자, 여러 배의 왜적들은 사기가 꺾이어 물러나므로 여러 장수와 군사와 관리들이 승리한 기세로 흥분하며, 앞다투어 돌진하면서 화살과 화전을 잇달아 쏘아대니, 그 형세가 마치 바람같고 우레같아, 적의 배를 불태우고 적을 사살하기를 일시에 다 해치워 버렸다.

 

다음의 내용은 스탬프투어의 승전지23 메모리투어 코스에서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 장소명: 한산대첩기념비

- 권역: 경남 통영시

- 인증 반경: 100m

- 서브타이틀: 한산도대첩(8)

- 내용

이순신 장군의 여덟 번째 승전보로 기록된 한산도대첩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날짜: 159278(양력 814)

. 결과: 왜군 피해(47척 격침, 12척 나포, 9000여명 사망), 조선군 피해(3명 전사, 10여 명 부상)

. 장소: 경남 통영시 한산도 앞바다

 

159278(양력 814)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연합함대는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73척의 일본의 최정예 함대를 맞아 유명한 학익진을 펼치며 대승을 거두었다. 한산도대첩 이후 조선은 바다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일본은 수륙병진작전의 좌절로 공격의 동력을 상실하였다. 한산대첩기념비는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79년에 세워진 비석이며, 비석의 높이는 20미터로 거북선을 본뜬 좌대 위에 세워져 있다.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와키자카는 이순신 장군에게서 겸손을 배웠다. 실제로 와키자카 가문은 ''''항상 겸손한 가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번영하였다 한산도에서 패전하고 이후 10일간 미역만 먹고 목숨을 부지했던 것을 기억하며, 와키자카 가문은 78일에 미역만 먹는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위치: 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산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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