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유지(有旨)와 함께 고기 반찬을 하사 하셨는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6-09-27

조회 4



유지(有旨)와 함께 고기 반찬을 하사 하셨는데,....

1597년 12월 5일 신유.  맑음. 아침에 군공(軍功)을 
세운 여러 장수들에게 상품과 직접(職帖)을 나누어 
주었다.  (中略)...도원수의 군관이 유지(有旨)를 
가지고 왔는데, "이번 선전관편에 들으니,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아직도 권도(權道)를 쫓지 않아서 
여러 장수들이 민망히 여긴다고 한다. 사사로운 
정이야 비록 간절하지만 나라 일이 한창 바쁘고, 
옛 사람의 말에도 "전진(戰陣:전쟁터)에서 용맹이
없으면 효(孝)가 아니다" 고 하였다. 전진(戰陣)에서 
용감하다는 것은 소찬(素饌)이나 먹어서 기력이 
노곤한 자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법에도 원칙을 지키는 경(經)이 있고 방편을 
취하는 권(權)이 있으니, 꼭 고정된 법 만을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경(卿)은 내 뜻을 깊이 깨달아서 
소찬 먹기를 그만두고(開素) 방편을 따르도록 하라" 
고 하였다.  유지(有旨)와 함께 고기 반찬을 하사
하셨는데, 마음은 더욱 비통하였다. 해남에서 강간, 
약탈한 죄인들을 함평에서 자세히 심문했다.

-  노승석 옮김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  -  에서 발췌

1597년 정유년은 이순신에게 있어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혹독한 시련의 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2월에 의금부로 압송되어 갖은 수모과 
능욕을 다 겪었으며 4월에는 옥에서 풀려 나와 백의종군 
길에서 어머님의 상을 당하였으나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또한 7월에는 원균의 칠천량패전으로 조선수군이 괘멸 
되었지만 13척의 배로 명량대첩을 이루어 구국의 길을 
열었으나 그 대신 셋째 아들을 왜놈들의 칼날에 잃어 
버리는 그야말로 살을 에이고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이순신의 
불굴의 의지는 꺽이지 않고 오히려 조선 수군을 재건하여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고하도에서 준비하고 고금도에 
통제영을 세우는 일들을 묵묵히 해냅니다.

원래 부모상에는 육식을 하지 않고 채소음식만 하는 것이 
예법이지만 전쟁에 임하게 된 상황에서는 육식하는 것을 
권도로 보고 임금께서 고기 반찬을 하사 하신 것 같습니다.

"경(經)은 상(常)의 뜻이니 절대 불변하는 법도나 원칙을 
말하고, 권(權)은 변(變)의 뜻이니 수단은 상도(常道)에 
위배되나 목적은 도(道)에 맞는 임기응변의 방편을 말한다."
고 합니다.

우리는 원칙과 방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수단과 
목적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 나중에는 원칙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하는 것을 
가끔 체험 합니다.

이것은 언어의 개념도 이해 못하지만 원칙 없이 좌절과 
분노로 몸과 마음이 흔들릴 때 나의 의지를 바로 세우지도 
못하고 그리고 법도를 지키지도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 입니다. 

이제 기업경영은 경제적인면만 다루기에는 너무도 제약이 
많습니다. 다국적 기업들과의 거래는 외교, 안보는 물론 
이거니와 문화와 역사까지도 아우르는 총체적인 예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어렵고 힘든 21세기의 AI 시대에서 나의 의지데로 
당당하게 펼쳐 나가려면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이 도에 
맞는 방편인지를 구분하는 실력을 쌓아야 할 것 입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l.net

추천메일 보내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