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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포 해전에서의 실패 원인 분석 (2010.05.17)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0-05-17

조회 23,546



장문포 해전에서의 실패 원인 분석


1594년 9월 29일(甲辰). 맑다. 배를 출발하여 장문포로 돌입하니 적들이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 나오지 않았다. 누각을 높이 짓고 양쪽 봉우리에는

보루를 쌓아 놓고 전혀 나와서 항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선봉의 적선

2척을 무찔렀더니 그만 육지로 올라가 도망쳤다. 빈 배만 불태워 깨뜨리고

칠천량에서 밤을 지냈다.

- [난중일기] – 에서 발췌


(전략) 이번의 거사는 벌써 날짜를 결정하고 또 통문을 돌려서

적으로 하여금 먼저 알고 미리 준비하게 하였으니 그것이 첫째 잘못한 것

입니다. 애초에 군사를 일으킬 날짜를 27일로 정한 다음 수군의 대오가

정돈되었는지의 여부도 묻지 않고 출동 날짜를 자주 연기하였으니 그것이

두 번째 잘못한 것입니다. (중략) 또 적들이 이미 높은 곳에다 배를 매어

두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자세히 탐문하지 않았으니 군사들이

놀라고 동요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잘못한

것입니다. 병법의 천 마디 말 가운데 그 요점을 말한다면 든든한 곳을

치느냐 금이 간 곳을 치느냐 하는 한 마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든든한 곳을 치면 금이 간 곳도 다 든든해지고, 금이 간 곳을 치면

든든한 곳도 다 금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돌을 떠낼 때

균열이 간 곳을 따라서 떠내지 않는다면 돌이 어찌 떨어지겠습니까.

이것은 난리가 난 초기부터 여러 장수들이 일찍이 관심을 돌리지 못한 점입니다.


- [선조실록 1594. 10. 13] - 에서 발췌


제7차 출전의 특색은 이순신 자신이 주도적으로 수립한 작전계획이 아니라

체찰사 윤두수와 권율이 주도하여 수륙 합동으로 적을 치려는 작전계획에서

이순신은 수군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또한 육군의 의병장들인

곽재우와 김덕령 등을 각 배에 승선시켜 수륙합공 작전을 실시하였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상륙을 시도하던 의병들이 완강하게 저항하는 적의 집중

사격에 겁을 먹고 맥없이 후퇴하는 바람에 아무런 전과도 없이 끝나고

만다. 그리고 이 작전의 후유증은 매우 컸다. 이 작전을 최초로 계획하고

주도한 윤두수는 이 작전 실패의 책임으로 탄핵되어 파면되었고,

이순신은 이번 출전 보고서를 원균이 쓰겠다고 하는 것을 허락하는 바람에

전투의 실상을 정확하게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마치 큰 전공이 있었던

것처럼 씀으로써 조정을 속였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도원수인 권율과

통제사 이순신에게 물어야 한다는 비난의 여론이 크게 일어나게 된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이번 거제도 일주를 하면서 장문포 해전을 새롭게 알게 되어 관련된 부분만

발췌하였습니다. 도원수 권율의 보고에 대한 비변사에서 회답한 보고

내용을 선조실록에서 적고 있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도 큰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을 떠낼 때 균열이 간 곳을 따라서 떠내지 않는다면

돌이 어찌 떨어지겠습니까. 우리 회사의 균열이 간 곳이 어디인지 든든한

곳이 어디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부경 올림

019-228-1151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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