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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강을 건너라 (2010. 9. 27)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0-10-05

조회 22,014



굴욕의 강을 건너라.

[고금도에서 왜적을 무찌른 장계]

통제사 이순신이 급보를 올렸다.

“얼마 전에 바다 가운데서 싸움을 할 때 우리 군사가 일제히 총을 쏘아

적의 배를 쳐부수자 적의 시체가 바다에 가득 뒤덮였습니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이어서 모두 갈고리로 끌어내어 목을 베지는 못하고 단지

70여 명의 머리만 잘랐습니다.

명나라 군사는 적의 배를 바라보고는 먼 바다로 피해 가버렸기 때문에

적을 한 놈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군사가 적을 잡은 수량을 알게

되자 진(陳)도독이 뱃전에 나와서 발을 구르면서 그 부하들을 욕하여

내쫓는 한편 신 등에 대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이 위협을 가했습니다.

계(季) 유격 또한 데리고 있는 가정(家丁)을 보내서 적의 머리를 요구

하기에, 신이 5개를 보내주었습니다. 다들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 선조실록 (1598. 8. 13. (丙寅) - 에서 발췌


1598년 7월18일, 절이도해전에서 적선 50여 척을 불태우고 적의 머리

70여 개를 베었으니 조선 수군이 완전히 재기한 해전 이었죠. 그러나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멀리서 참관만 한 진린에게 수습한 적의 수급 중에서

40여 개를 주었습니다. 진린에게 바친 전공, 이순신과 조선 수군으로서는

치욕적인 일이었죠.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으며 군량미를 풀어 조선

수군은 굶주려도 민간인은 먹지 못해도 명나라 수군은 든든히 먹였습니다.

그런데도 명나라 수군은 전투에는 언제나 소극적 이었죠. 눈앞의 적은

급한데 정작 우군은 딴 짓만 하고 있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이었을까요?

이순신은 갖은 횡포를 부리는 진린을 묵묵히 받아드리며 끝까지 포용

했습니다. 명목상 그가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만에 하나 진린과 갈등을 겪게 되고 그것이 조.명 사이에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한다면 왜적을 섬멸 하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순신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는 판옥선을 바치는 수모와 굴욕까지도 견뎠던 것이죠.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꼭

건너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굴욕의 강 입니다

한 컵짜리 그릇에는 한 컵의 물밖에는 담을 수 없습니다. 그 한 컵에 어찌

자존심과 우월감만 담겠습니까? 만약 내 그릇이 한 컵밖에 안 된다면 그

그릇을 키우십시요. 이제는 수모와 굴욕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

하십시요. 굴욕의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수모의 고갯길에서 주저앉고

만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현실의 수모와 굴욕을 이기고 견뎌낼

때 승리의 리더십, 성공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부경 올림

019-228-1151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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