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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痛哭) (2010. 10. 11)
관리자
2010-10-11
22,120
통곡(痛哭)
1597년10월14일(辛未). 맑다. 새벽 2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서 냇물 속에 떨어지기는 했으나
쓰러지지는 않았으며, 끝에 가서는 아들 면(勉)이 나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깼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중략)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으로부터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열어
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심기가 혼란해졌다. 겉봉을 뜯어내고 그
속의 편지봉투를 보니 겉에 열(이순신의 둘째 아들)의 글씨가 보였는데,
“통곡(痛哭)”이란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면(이순신의 셋째 아들)이
전사하였음을 알고 나도 몰래 간담이 떨어져 소리를 내어 통곡, 통곡하였다.
(후략)
- 난중일기 – 에서 발췌
얼마나 놀라시고 상심하셨을까?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으니 어버이의 마음으로써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전쟁터에서 그나마
유일한 위로는 가족이 안전하게 고향에 있는 것이었는데…..
어제 저희들은 또 하나의 “통곡”을 보고 왔습니다. 진도에 있는 “정유재란
순절묘역”에 다녀왔습니다. 이순신이 명량대첩을 끝내고 서해대장정을
하고 있을 때 왜적들이 진도 사람들을 이순신을 도왔다고 해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는데 그 후에 떼 무덤을 만들어놓은 곳 입니다.
마침 명량대첩 축제 기간 이어서 이름없는 민초들의 말없는 희생 앞에
위령제도 지내며 상여를 메고 나가는데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였답니다. 순국선열들이 지켜낸 이 조국을 그냥 “통곡” 만으로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400여 년 전에 장군의 아들도 민초들의 아들도 희생된 임진왜란, 그러나
우리는 보라는 듯이 정말 잘 살아서 후대에도 물려줄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
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두 번 다시 통곡하지 않으려면 지금 입니다. 회사도 나라도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꼭 지켜 내야 합니다.
이부경 올림
019-228-1151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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