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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수길(豊臣秀吉)의 사망 소식(2011. 8. 16)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1-08-15

조회 23,167




풍신수길(豊臣秀吉)의 사망 소식



[임금이 참정 왕사기(王士琦)의 숙소로 가서 그를 접견하였다.
왕참정 : “근일에 당보(唐報)를 통하여 이러저러한 말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국왕은 들었습니까?
선조 : 우리나라 측에서는 변방 보고가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내용의 당보가 왔는지 모르고 있으니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왕참정 : 관백이 병으로 죽었다고 하는 당보(唐報)가 연달아
왔습니다. 하지만 곧이들을 것이 못 됩니다. 지금
명나라 군사가 바다와 육지로 일제히 밀어 내려오고
있으니 오직 적을 섬멸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자가 죽었건 살았건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선조 : 흉악한 적들은 변덕스럽고 교활해서 별 짓을 다합니다.
관백이 병으로 죽었다는 그런 소리를 자꾸 하지만
곧이듣기 어렵습니다.”]

- [선조실록 1598. 8. 17 (庚午)] - 에서 발췌

풍신수길(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37년 음력1월1일
오아리국 (현 나고야시) 에서 태어나 1598년 음력8월18일
후시미성에서 죽었으며 조선에 출병한 왜군들의 사기문제 때문에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고 그의 죽음은 비밀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그의 무덤은 폭파되어 소실되고
맙니다. 이것은 임진왜란의 원인이 된 장본인의 무덤을 처단
함으로서 조선에 임진왜란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요에 의해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일본의
조선과의 외교관계 회복을 위해서 취해진 조치였습니다.

풍신수길의 사망으로 왜군은 철수를 서두르고 임진왜란은 그 해
11월19일 노량해전을 끝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전사와 함께
7년간의 참혹한 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 후 300년이
지나서 풍신수길의 후예들은 이 땅을 다시 짓밟고 36년간의 긴
세월을 식민지 치하의 고통과 잃어버린 100년을 안겨줍니다.

오늘은 광복절, 역사를 바로 알고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를 모아
두 번 다시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는 당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가슴 깊이 새겨 봅니다. 역사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천한 농민의 아들에서 천하인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 풍신수길의 기지와 임기응변의 군사적, 정치적 수완을
보여준 전국통일의 리더십과

참혹한 전쟁 중에서도 좋은 가문의 유교교육의 힘으로 충(忠)과
효(孝)를 기본으로 한 충무공 이순신의 전략적 리더십, 불가능을
가능으로 보여준 긍정의 리더십, ….희망, 에너지….보이십니까?
이순신처럼 생각하고 실천하기 지금부터 시작 입니다.

이부경 올림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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