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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참판(贈參判) 정운을 제사하는 글(祭贈參判鄭運文) (2011.9.5)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1-09-05

조회 22,667



[아, 인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고 사는 데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으니,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이야 정말로 아까울 게 없으나

유독 그대의 죽음에 대해서만 나의 가슴 아픈 까닭

무엇인가요.

- 중략 –

네 번이나 싸워 이겼으니 그 누구의 공이었는가

종묘사직 회복함도 몇 날 남지 않은 듯하였을 때

어찌 알았으랴, 하늘이 돕지 않아 적의 총알에 맞을 줄을

저 푸른 하늘이시여, 당신의 뜻은 참으로 알기 어렵나이다.

- 중략 –

믿고 의지했던 것은 오직 그대였는데 앞으로는 어이하리

진중의 여러 장수들 원통해하기 그지없다오.

백발의 늙으신 부모님은 장차 그 누가 모실는지

황천까지 뻗친 원한 언제 가서야 눈을 감을는지

- 중략 –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그 재주 다 못 폈을 때 지위는 낮았으나 덕은 높았으니

나라의 불행이고 군사들과 백성들의 복 없음이로다.

그대 같은 충의(忠義)야 말로 고금에 드물었으니

나라 위해 던진 몸 죽었으나 오히려 살아 있음이어라



아, 슬프다. 이 세상에 그 누가 내 마음 알아주랴.

슬픔 머금고 극진한 정성 담아 한잔 술 바치오니

아, 슬프도다.]



박기봉의 [충부공 이순신 전서 제1권] – 에서 발췌



1592년8월24일부터9월2일까지 부산포 해전을 치루는

와중에 녹도 만호 정운 장군이 왜적의 총에 맞아 전사

하였고 (정운 장군의 순절일은 음력으로 9월1일 입니다.)

그 후 조정에서는 정운에게 병조참판을 추증 하였는데,

이 추증이 이루어진 후에 이순신은 손수 제문을 지어

정운에게 제사를 지내 주었습니다.



정운은 본관은 하동이고 이순신보다 두 살 위인 1543년에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여 어디서나 강직하고

정의를 지키기 때문에 이순신과 뜻을 같이 하고 호흡을

잘 맞추는 진정한 동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인물

이었지요. 이순신의 오른팔, 훌륭한 팔로워이자 부산포

해전의 돌격장, 훌륭한 리더였습니다.



요즈음 리더는 있는데 리더십은 없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부하들은 있으나 팔로워십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접할 줄도 모르고 모셔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실 줄 도 모르는 조직원들로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순신 제독은 순천부사 권준(權俊),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 녹도만호

정운(鄭運) 등 서로 같이 죽기를 기약하고 매사를 같이 의논

하고 계획을 세우는 독수리 오형제 같은 충성스런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부하들로 둘러싸여 있는지, 어떤 부하들과 의논하고

있는지 잠깐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리더이든 팔로워이든 다섯 사람은 고사하고 단 한 사람이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뜻을 같이 하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이부경 올림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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