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뢰나이다.
행재소에서 소용되는 종이를 수량을 넉넉히 올려 보내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장계를 받들고 가는 사람이 길이
멀어서 운반하기 어려우므로 우선 장지(壯紙) 10권만 봉하여
올려 보냅니다.
– [봉진지지장(封進紙地狀), 1592. 9. 18(乙亥)] – 에서 발췌
아무리 피난 중인 행재소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한심한 상태에
있었으면 강한 왜적을 맞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변경
수군 부대 장수에게 조정의 사무용품인 종이를 마련해 올려 보내
라는 지시를 다 하고 있을까, 이로부터도, 이순신의 수군은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한 작은 지방의 자력으로 꾸려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군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탄복하게 한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제1권] - 에서 발췌
1592년9월25일의 군량을 실어 올려 보내는 장계, 장송전곡장
[裝送戰轂狀]에는 올려 보내는 물목(物目)까지 적어 보냅니다.
자체 군수물자 조달만이 아니라 피난간 조정까지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입니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나 하는 의문이죠. 그러나 이순신은
묵묵히 해내고 있습니다.
상사로부터 힘들고 무리한 지시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는 고민합니다.
더욱이 중간위치에 있는 리더라면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을 것 입니다.
난중일기나 장계를 읽어 보면 끊임없이 선조와 조정을 설득하고
부하들과 약속하는 글이 많이 나옵니다. 모두를 지혜롭게
다독여가며 매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정보기기의 발달로 소통이 더 잘될 것 같은 세상에 요즈음의
화두가 [소통] 입니다. 이순신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피난살이 조정까지 지원하면서도 싸울 때 마다 이기는
연전연승의 원리는 바로 [소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