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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진주성 전투(임진년10월5일 ~ 10월10일) (2011.10.10)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1-10-10

조회 22,450



제1차 진주성 전투(임진년10월5일 ~ 10월10일)
 
부산 등지에 주둔한 왜적들이 군사를 합쳐 가지고 크게
떨쳐나서 진주를 둘러쌌다. 
처음에 적군들이 유숭인(柳崇仁)의 군사를 패배시키고
여러 고을을 분탕질 한 다음 진주로 향하려고 하므로,
김성일은 호남의 의병장들인 최경회(崔慶會)와 임계영(任啓英)
에게 구원을 청하여 진주로 가게 하였다.
 
적이 진주에 다가들자 유숭인이 성 밑에 달려와서 들어
가려는 것을, 김시민이 장수의 명령체계가 전일(專一)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성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성문을 단속하고 있으므로 여닫을 때 뜻밖의 걱정거리가
생길까 우려된다. 주장은 그저 성 밖에서 응원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였다.
 
유숭인이 돌아오다가 적과 마주쳐서 패하여 사천 현감 정득열
(鄭得悅), 권관 주대청(朱大淸) 등과 함께 다 죽었다. 
곽재우가 김시민이 유숭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 계책이 성을 보전하였으니, 이는 진주
사람들의 복이다.” 라고 하였다.
김성일이 의병장 곽재우, 이달(李達) 등을 보내어 진주를
응원하고 샛길로 무기를 실어 보냈다.  목사 김시민이 적군을
크게 격파하니 진주의 포위가 풀려졌다.   –  후략  -
 
-       선조 수정실록 (1592년 10월)  -  에서 발췌
 
제1차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육전에서 처음으로
조선군이 승리한 김시민 장군과 각도의 의병장들과 진주성 안의
백성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결전한 6일간의 진주대첩 입니다.
 
진주목사 김시민(장군, 정3품)의 탁월한 판단력과 지휘력이
돋보이는 전투로서 자기보다 벼슬이 높은 유숭인(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종2품) 을 되돌려 보내는 단호한 의사결정이
눈에 띄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장흥부사 황세득(이순신의 처종형)을 예교성
전투에서 명수군 진린 도독을 구하기 위하여 적지로 보내신
처절하고도 단호한 의사결정을 하셨습니다.
 
나라의 대의를 위하여 아군의 희생을 각오하신 장군들의
의사결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  적어도 리더만이
할 수 있는 단호한 의사결정은 평소에 자신을 갈고 닦은
수신(修身)에서 나오는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리더의 능력은 어떻게 남을 지휘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자
능력이다.” 라고 미국의 기업관리 전문가 멕베스는 말합니다. 
 
역시 수신(修身)과 일맥상통한 말입니다.  자기자신을 바르게
하고 매사에 철저히 준비하고 전문실력으로 무장할 때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 판단력이 생기면서 결국에는
훌륭한 승리로 평가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수신치국평천하(修身治國平天下)까지는 못 가더라도 수신(修身)
만이라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보시는 것은 어떠시겠습니까? 
디지털 시대의 중요하고도 긴박한 의사결정을 위하여 말입니다.
 
이부경 올림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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