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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계급장을 떼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09-24

조회 21,674



 현장에서는 계급장을 떼라.!



1594 1128 일기 이후 메모 글, 53, 곳간을 뒤져 조사


하니, 군량이 349144되와 나무를 팔아 들인 쌀(貿木米) 80,


모두 432 144되에서 지금 남은 것이 65 144되이다.


1595 219, 송한련이 와서 말하기를 “고기를 잡아 군량을


샀다.”고 했다.


1595124, 황득중과 오수 등이 청어 7,000여 두름을 싣고


왔기에 김희방의 무곡선(貿穀船)에 계산하여 주었다.


15951121, 이날 저녁에 청어 13,240 두름을 곡식과 바꾸려고


이종호가 받아갔다.


1595 517, 오늘 쇳물을 부어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만들었다.


159616, 오수가 청어 1,310두름을, 박춘양이 787두름을


바쳤는데, 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리기로 했다. 황득중은 200두름을


바쳤다.


1597 1020, 김종려를 소음도 등 열세 개 섬의 염전의


감자도감검(監煮都監檢, 감독관)으로 장하여 보냈다.




-
박종평의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 - 에서 발췌



전쟁 중에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들과 군사들을 위해서 애쓰신 이순신


장군의 모습 입니다. 나라에서 지원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조정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여 보냈으니 전장을 지키는 장군의 마음은 어떠하였겠습니까?



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아가 고기를 잡아 군사와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며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장군이 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여 직책과 상관없이 부하들과 함께 몸소 실천한 행동이었으며


자기 혁신이었습니다.



“이순신은 부하들과 함께 때로는 어부가, 때로는 나뭇꾼이, 때로는 소금을


굽는 노동자가 되었고, 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양반 사대부들의 가장


천시하는 말업인 상업은 물론 공업, 가장 힘든 일이었던 소금 제조까지


앞장서서 했다.” 고 작가 박종평은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순신이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것은 사랑하는 자식


들을 위하여 체면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 조차도 두려워 하지 않는


어버이와 같이 현장에서 힘들고 지친 가엾은 백성들과 함께 했기 때문


입니다.



조선시대 수많은 실학자와 혁신가 중에 그 누가 이순신처럼 실제 현장에서


직접 팔을 걷고 일을 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우리 지도자들은


어떻습니까? 현장에서는 계급장을 떼십시오.



그리고 부하들과 함께 하십시오. 함께 하는 시간은 신뢰를 쌓을 것이며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앞장서서 일하는 당신을 위해 목숨 바쳐 따를 것


입니다. 직장에서 생사를 같이 하는 동료애는 바로 애국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말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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