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1597년10월14일(辛未). 맑다. 새벽 2시쯤에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서 냇물 속에 떨어지기는 했으나 쓰러지지는 않았으며, 끝에 가서는 아들 면이 나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깼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 (중략) - 하늘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한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아 있다니, 어찌 이런 괴상한 이치가 다 있단 말이냐. 천지가 깜깜해지고 해조차도 빛이 바래는구나. 슬프구나,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남 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에 남겨 두지 않은 것인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그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연명은 한다마는, 이미 속은 죽고 껍데기만 살아있는 셈이니 그저 울부짖으며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일년 같았다. 이날 밤 10시경에 비가 내렸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난중일기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슬픈 장면 입니다. 왜적의 칼날에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이 절절이 녹아내립니다. 이 슬픔을 어찌 글로 다 표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전쟁 중에 가슴에 묻은 아들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셨을테니까요.
장군이기 이전에 리더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시련 앞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으시는 이순신 장군이지만 정유년에는 백의종군 길에 어머니를 여의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시고 명량대첩 후에는 예기치 않게 막내아들도 잃고.....
이런 어려운 시련들이 장군의 마음을 더욱 더 강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련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느냐 아니면 디딤돌로 삼고 다시 일어나느냐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몫이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장군의 이러한 인생 역경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인생 혹은 회사경영에 있어서 뜻하지 않은 혹독한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 무언의 멘토를 들려 줍니다. 지금의 이 어려운 역경은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헤쳐나갈 수 있다. 꼭 해낼수 있다. 하고 다짐하게 되시지 않으습니까?
요즈음 국내외적으로 경제도 어렵고 시장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장군의 위대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시간 입니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누르고 순수하고 진정으로 맑은 감성을 있는 그대로 보이십니다. 며칠 후 "나는 내일이 막내아들 죽은 소식을 들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인데도 여태 마음 놓고 통곡할 수 없었으므로, 섬안에 있는 강막지의 집으로 갔다. 새벽에 죽은 자식을 위해 흰 띠를 두르고 향을 피우고 곡을 하였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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