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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준비로 다시 경영현장으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11-06

조회 22,413







철저한 준비로 다시 경영현장으로..... 


이순신이 드디어 보화도(寶花島 : 목포 고하도)로 진군하자 전쟁에 나갈 군사가
1천여 명이나 되었는데, 군량이 모자라는 것을 근심하여 마침내 해로(海路) 통행첩을 
만들고 포고하기를, "공사선(公私船)을 막론하고 삼도의 모든 배들은 이 통행첩이
없으면 간첩으로 간주하여 처벌할 것이다."라고 하니, 피난선들이 모두 와서 통행첩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이순신이 배의 크고 작은 데 따라 차등 있게 쌀을 바치고 통행첩을
타가게 하자, 열흘 동안 쌀 만여 섬을 얻었다. 
군사들이 또 의복이 없어서 걱정을 하자, 이순신은 피난 온 백성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왜 여기까지 왔느냐."라고 하니, 모두들 대답하기를, "사또를 믿고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순신이 말하기를 ,  "지금 날씨가 춥고 바닷바람이 차가워서 군사들은 모두 손가락이
얼어서 빠지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적을 맞아 싸워 이겨 너희들을 지켜 줄 수 있겠느냐.
너희들에게 남은 옷이 있을 터인데 어째서 우리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지 못하느냐."라고
하자, 백성들은 다투어 남은 의복들을 가져와 바쳤다.
또 사람들을 모집하여 구리와 쇠를 실어다가 대포를 만들고, 나무를 베어다가 배를 만드는 등
모든 것들을 다 마련하였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중 선묘중흥지(宣廟中興誌)   -   에서 발췌


명량대첩이 끝난후 조선수군의 재건을 위하여 이순신은 목포 앞바다의 고하도로 진을 옮깁니다.
겨울을 나는것도 문제였지만 군량과 군수물자를 확보 하여야 하였고 군사들을 모으고 전선도 
건조하여야 했습니다.  다시 조선수군의 경영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의 궤멸로 모든것을 잃고 그나마 배설이 12척을 가지고 탈영한것이
밑바탕이되어 명량대첩까지는 치루었지만 어느것 하나 남아 있는것이 없었습니다.  부하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해로통행첩을 발행하여 고하도에서 다음의 전투를 준비 합니다.  

필자가 마츠시다에 근무할때의 일 입니다.  상사는 항상 너희들의 능력은 어떤 일의 단도리(段取)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로 평가한다. 하곤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실력이나 일의 성과로 평가하지 않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경영자가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조직에서는 항상 챙기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 얼마만큼 준비를 잘 했느냐에 따라서 그 프로젝트는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술개발하는 회사라고 기술 동향만 시장조사 했습니다.  첨단기술에 대한 현황에 더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시장조사는 기술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
할것인지까지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그 산업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기회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이순신은 군사들의 훈련도 준비항목으로 보았습니다.  지휘체계도 전법도 철저하게 훈련하고
숙지하도록 준비 합니다.  저는 사원들의 교육(훈련)이나 사용자들의 교육은 준비단계보다는
사후관리 차원에서 보았습니다.  유지보수할 때 잘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준비하지 않으면 도망가야 한다는 사실을 1592년4월13일에 똑똑히 보았습니다.  무기를
버리고 궁궐을 버리고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역사에 남겨 놓았습니다.  모든 업무의
준비태세는 기업의 관리능력 입니다. 준비하는 기업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더 크고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겨놓고 싸우는 그 다음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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