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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들, 일본에서 돌아오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12-09

조회 22,035



통신사들, 일본에서 돌아오다.


통신사 황윤길(黃允吉) 등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왜국 사신 평조신(平調信) 등도
함께 왔다.  -  중략  -
부산에 도착하여  황윤길이 일본의 상황에 대한 급보를 올리기를, 반드시 전란이 터질
것이라고 하였다.  다녀온 보고를 한 뒤에 임금이 그들을 불러보고 물으니 황윤길은
이전과 같이 대답하였으나, 김성일은 말하기를 "신은 전란이 터질 어떤 기미도 보지
못했습니다,  황윤길이 장황하게 말씀을 올려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은 일의
원칙에 심히 어긋납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이 수길의 모양이 어떻든가 하고 물으니, 황윤길은 그의 눈빛이 번쩍번쩍 하는 것이
담력과 지혜가 있는 사람 같더라고 하였으나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새끼 눈과 같아서
무서워할 나위도 못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대체로 김성일은 황윤길 등이 일본에서 겁을 먹고 체면을 잃은데 격분하였기 때문에 모든
말에서 이렇게 엇나갔던 것이다.  - 중략  -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일부러 황씨와 어긋나게 말하는데, 그러다가 만일
전란이라도 터지면 어떻게 할 셈인가? 라고 하니, 성일이 대답하기를 " 나도 왜놈들이
반드시 쳐들오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단지 온 나라가 놀라고
의혹을 가질 것 같기 때문에 그것을 풀어주려고 할 따름입니다." 라고 하였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중 선조수정실록 1591. 3. 1 丁酉]  -  에서 발췌


지난주 조선침략의 전초기지 일본 사가현의 히젠나고야 성터를 답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왜적의 동태를 살피러 조선 통신사가 1590년도에 다녀갔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히젠나고야성을 1591년에 세웠으며......우리는 동인 서인으로 나뉘어서 국론 분열만 일삼고 ....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임명 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히젠나고야성의 천수각터에서 바로 보이는 섬이 대마도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바다를 바라보며 조선침략의 계획을 세우며 준비를 하였다고 생각하니 분한 마음 가눌길이
없었습니다.  조선의 온 국토를 유린하며 조선 백성의 반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간 침략전쟁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것인가?  내가 왜 이 자리에 왔는가 하고 반문해 봅니다......

나는 적의 눈으로 적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떻게 싸워 가질 것인가?
왜적의 동태를 살피러 온 사신들이 사사건건 부딪치고 예의를 따지니, 후일 대마도의
평의지(平義智)가 우리 사신에게 이르기를 "김성일은 한갓 절개와 의리만 내세움으로써
사단(事端)을 빚어냅니다." 라고 하였답니다. 벌써 침략의 대상인 조선의 상황 파악은 끝난것이지요.

우리들도 영업할때 고객이나 경쟁상대의 직원들과 미팅해 보면 벌써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금방 감을 잡지 않습니까?  몇 번 만나서 협상이라도 하게 되면 더욱 더 뚜렸해지지요.
한번쯤은 적의 눈으로 나를 바라다 보는 것도 중요 합니다.  적이라면 나를 어떻게 공격해 올것
인가 하고 말입니다.

함께 간 사신들이 똘똘 뭉쳐도 왜국의 정세를 읽을지 말지한데 통신사들끼리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요구하는것이 다르다고, 적에게 우리의 속내를 다 보였으니 적들은 침략의 프로젝트를 더욱 더 
강화시켰겠지요.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힘을 합해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런지요.

다른것과 틀린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인정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의 결과를 시뮬레이션
할 줄 알아야 하고,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자만하지 않음으로써 궁극적
으로 우리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의 경제전쟁에서도 통용 되는 전략임을 알려주는
좋은 교훈 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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