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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을 앞둔 우리의 국방태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2-25

조회 21,488








전란을 앞둔 우리의 국방태세!


1592년2월22일(癸丑). 
아침에 공무를 본 뒤에 녹도(鹿島)로 갔다.  황숙도
(黃叔度)도 같이 갔다.  먼저 흥양(興陽) 전선소(戰船所)에 이르러 배와 기구를
직접 점검하고, 그 길로 녹도로 갔다.  곧장 새로 쌓은 봉두(峰頭) 문루에 위에
올라가 보니, 경치의 빼어남이 이 경내에서 제일이었다.  만호(萬戶) 정운(鄭運)의
애쓴 정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흥양 현감과 능성현감 황숙도, 만호와 함께
취하도록 마시고 겸하여 대포 쏘는 것도 보았다.  촛불을 밝히고도 한참동안 있다가
자리를 파했다. 

1592년2월25일(丙辰).  흐림.  여러 가지 전쟁 준비에 결함이 많아 군관과 색리들
에게 벌을 주었으며, 첨사(金浣)는 잡아들이고, 교수(敎授)는 내어 보냈다.  방비가
다섯 포구 가운데 가장 못한데도 순찰사가 포상하는 장계를 올렸기 때문에 그 죄상을
조사하지 못했으니 가소로운 노릇이다.  역풍이 크게 불어 출항할 수 없어서 그대로
머물러 잤다.

-  노승석의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  -  에서 발췌

임진년 봄에 신립과 이일을 나누어 보내서 지방의 군비를 순시하도록 했다.
이일은 충청도.전라도로 가고, 신립은 경기도.황해도로 가서 모두 한달이
지난 뒤에야 돌아왔는데 점검한 것은 활.화살.창.칼 같은 것뿐이요, 군읍에서는
모두 문서의 형식만 갖추고는 법을 회피하려 들기만 하고 방어에 관해 별달리
좋은 계책이 없었다.  신립은 평소부터 성질이 잔인하고 사납다는 평판이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여 자신의 위엄을 세우니 수령들이 두려워하여
백성을 동원해 길을 닦게 하고 그에게 지나칠 정도로 대접하니 비록 대신들의
행차라도 이것만 못하겠다.

-  이재호 옮김의 [유성룡의 징비록]  -  에서 발췌


420년전의 오늘,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유성룡의 징비록을 살펴 보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모두 걱정하며 준비하고 있는 그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잘 아시다시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육전에서는 대책없이 무너져 불과 20일만에
한양을 내어주는 수모를 겪었지만 수전에서는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한산대첩 등
제해권을 확실하게 틀어지고 왜적의 수륙병진 작전을 실패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  우리는 임진왜란이 주는 교훈을 어디까지 읽고 있을까,
지금의 우리가 처해 있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도 통용 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준비 태세가, 그래서 한층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준비 한다는것 참으로 어렵습니다.  무엇을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가늠조차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다 준비 했다고 해도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나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옵니다.

임기응변도 좋고 주위사람들의 도움도 좋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본인이
일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준비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이 없듯이 준비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쪽같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철저한 조사(Research)와 함께 치밀한
기획(Planning)이 선행 되어야겠지요. 

"기획에 실패하면 실패를 기획하는것이다." 라고 합니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 
내 사업의 준비태세는 제대로 기획되어 있는지 보름달을 보며 다시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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