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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탄금대 전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4-09

조회 21,561








아! 아! 탄금대 전투!


신립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차례로 진격시켰으나 마을길이 비좁은데다
논밭이 많아 말을 치달리기에 불편하여 머뭇거릴 즈음에, 적이 우리
군사의 좌측으로 돌아나와 동쪽과 서쪽에서 끼고 공격해오는 바람에
우리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지면서 적에게 난도질을 당한 결과,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군자(軍資)와 군기(軍器)가 일시에 모두 결딴나고 말았다.
신립이 단신으로 말을 타고 강 언덕에 이르렀는데 적이 군대를 풀어
추격하자 물에 몸을 던져 죽었으며 김여물도 투신하였다.

-  신흠의 [상촌집象村集]  -  에서 발췌

조선의 장군 신입석(신립의 오기로 추정)이 수만명의 조선군을 이끌고 충주
북쪽의 송산이라는 곳에 진을 쳤다.  일분군 중 최초로 공격한 것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인 소 요시도시가 이끄는 부대였다.  전투 끝에 조선군이 패배
했으며 일본군은 3000 개의 수급을 취했고, 수백 명을 사로잡았다.

-  덴케이의 [서정일기(西征日記)]  -  에서 발췌 


1592년 4월27일 탄금대 전투에 참전했던 양재도찰방(良才道察訪) 신흠(申欽)의
기록 입니다.  신립은 왜 패배했는가?  임진왜란 최대의 미스테리 입니다. 
왜 조령을 포기하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을까?

그 날, 같은 현장에 있었던 일본의 종군승 덴케이의 증언 입니다.  조선군은 거의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제대로 반격 한 번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총사령관인 신립은 강물에 몸을 던집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것은 훈련 안된 농민들을 전쟁이 일어났을때만
소집을 한다는 시스템은 군사를 부릴 수 있는 전장의 전략과 전술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인것 입니다.  준비 안된 사람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또 하나 더 있는것 같습니다.  적을 알아야지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 입니다.  적을 모르니 상대편을 무시하고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신중하지 못한 장군의 처사에 얼마나
많은 군사들과 백성들이 희생이 되었는지요.
  
이번주 토요일에 직접 조령 제1관문에서 제3관문으로 그리고 탄금대까지 산행을
합니다.  리더십 버스 39차는 적의 눈으로 조령을 넘어보고 적의 적의 눈으로
탄금대에서 적을 맞이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뼈아픈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누가 우리를 위해서
지켜주며 힘을 쓰겠습니까?  역사에서 배우는 통찰력 그리고 경영자(리더)로서의
마음가짐, 명령과 지시, 함께 생사를 나누는 섬김과 사랑의 동지애, 모두 보석같은
교훈 입니다.  함께 공부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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