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1597년4월19일(기묘). 맑음.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니 영전(靈前)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나 같은 사정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조카 뇌의 집에 이르러 조상의 사당 앞에서 하직을 아뢰고 길을 떠났다. 금곡(金谷)의 강선전(姜宣傳)의 집 앞에 이르러 강정(姜晶)과 강영수(姜永壽)씨를 만나 말에서 내려 곡했다. 길을 떠나 보산원(寶山院)에 이르니 천안군수가 먼저 와 있어, 냇가에서 말을 내려 쉬러 갔다. 임천군수 한술(韓述)은 중시(重試) 보러 서울로 가던 중에 앞길을 지나다가 내가 있다는 말을 듣고 들어와서 조문하고 갔다. 아들 회, 면, 울, 조카 해, 분(芬), 완(莞)과 변주부(主簿) 존서가 함께 천안까지 따라왔다. 원인남(元仁男)도 와서 만나고 작별한 뒤에 말에 올랐다. 일신역(日新驛)에 이르러 잤다. 저녁에 비가 뿌렸다.
- 노승석의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 - 에서 발췌
4월1일 "옥문을 나왔다." 로 시작되는 정유년 4월의 난중일기는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일기들 입니다. 13일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19일에는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금부도사를 따라 백의종군의 길을 떠나야 하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상황의 연속 입니다.
마침 지난 4월19일, 이번 리더십 버스 40-1차가 이순신 제독이 통곡하며 떠났던 아산을 거쳐 천안을 지나가면서 모두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효(孝)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되짚어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리더들은 슬픔을 어떻게 감내할까? 어떤 방법으로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이겨낼까? 훌륭한 인물일수록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이순신 제독은 아마도 일기를 쓰면서 내적성찰을 하며 인내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순신 제독은 평생을 충(忠)과 효(孝)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 왔는데 정유년 2월에 역심을 품고 임금의 명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억울한 죄로 의금부에 잡혀 올라가서 그나마 사형을 면하고 백의종군으로 임지로 가던 중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통곡하면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려 했건만 이미 죄를 얻었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만 어버이 또한 돌아가셨다." 고 울부짖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 말씀이신지 지금 들어도 참으로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습니다.
이순신 제독의 역경을 보며 슬퍼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연민의 정을 느끼기 때문이며 남의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크든 작든 한 조직의 리더의 위치에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슬픔을 극복해야 할까요?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말합니다. "슬픔은 상실, 낙담의 낮은 에너지 수준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경험을 하지만 이 수준에 남아 있어서는 않된다.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에너지로 의식을 향상시켜 긍정적인 마음으로 신뢰하고 용서하는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고 합니다.
어떠한 역경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다시 도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식만이 진정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자세일 것입니다. 이순신 제독의 슬픔과 역경을 이겨내는 난중일기가 우리에게 주는 힘있는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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