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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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約束)은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1592년5월3일(壬申). 가랑비가 아침 내내 내렸다. 중위장(방답 첨사 李純信)을
불러서 내일 새벽에 떠날 것을 약속하고 즉시 장계를 썼다. 이날 여도 수군 황옥천
(黃玉千)이 자기 집으로 도망간 것을 잡아다가 목을 베어 군중에 높이 매달았다.
1592년5월4일(癸酉). 맑다. 새벽녘에 출발하여 바로 미조항 앞바다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약속했다. 개이도(介伊島 : 싸리섬)를 거쳐 평산포, 상주포(尙州浦),
미조항(彌助項)을 지나갔다. 남해도 앞을 돌아 소비포(所非浦)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 일찍 출발하여 당포로 향했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조선수군으로서 첫번째 전투인 옥포해전을 치르러 나가는 이순신의 결정입니다.
전라우수영의 함대를 5월3일까지 기다렸으나 오지않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좌수영 함대 단독 출항을 결정하고 당포로 나갑니다.
이순신 정도의 장수라면 당연히 명령을 해야 하는데 왜 [약속했다] 라고 하는지
의문이 갑니다. 부하들과 무엇을 약속한단 말인가? 다름아닌 전쟁을 치르러
나가는 마당에 무슨 여유를 부린단 말인가?
그러나 이순신은 전쟁에 참전하는 모든 부하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참여의식과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의 박종평 작가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했을까. 그는 대부분 자신이 먼저 결정한 후 통보를
하거나, 사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동료나 부하들로부터 먼저 듣고, 묻고,
의논한 뒤에 최종 결정을 했다. 그런 의사결정을 이순신은 대부분 약속(約束)이라고
표현했다. 약속의 한자 뜻은 "맺고 묶는다"는 것이다. 함께 의논해서, 또 때로는 듣고
묻고 해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결정이라는 표현 대신 상호 소통의 결과인 "약속"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 박종평의 이순신처럼 소통하라 - 에서 발췌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아니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통이라는 문제가
요즈음의 화두가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모두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자기
얘기만 하는것은 아닌지요. 명령과 지시만 있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약속이란 소통과 일맥상통한 것으르서 자신을 낮추고 우리 모두 함께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진정성을 보이는 자세, 이것이 소통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해줄때 약속은 잘 지켜지며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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