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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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월 26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71호,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49호로 지정되었다가 지방기념물로 격하
전라도 지방에 있는 유일한 왜성
성곽규모가 36,480평(188,428㎡)이고 외성 길이 2,502m, 내성 길이 1,342m, 내성높이 4m, 외성높이 5m
외곽성(토·석성) 3개, 본성(석성) 3첩, 성문 12개로 축조되었다. 성을 쌓은 돌의 크기는 1.5∼2m이고
<정왜기공도>에 묘사된 순천왜성
당시 명군을 따라왔던 화가가 폭 30Cm 길이 6.5m의 두루마리에 그린 것
왜성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호수.
순천왜성은 정유재란(1597년)에 침략 최정예 부대의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1만 4000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며 조·명 수륙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최후·최대의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문지 1. 본성과 외곽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주출입문
문지 양 옆을 깊게 퍼 해자를 만들고 바다물을 끌어들여 섬처럼 만들어 방어에 치중
이 곳 출입로가 다리처럼 보면 이 곳 출입로가 다리처럼 보여 왜교 또는 예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견고하게 쌓여진 성곽, 우리나라 성곽과 느낌이 다르다.
석축 쌓기 방식은 자연석을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이며
문지의 상단부를 큰 돌로 쌓아 적에게 위압감을 주는 심리전에 이용하였다.
문지(門址)2
천수에 이르는 주 출입문.
일직선으로 진입하지 않고 "ㄱ"자 형태로 꺾어 진입하는 구조이다.
문지의 바깥쪽은 성벽이 남쪽으로 길게 연결된다.
'천수기단'
천수건물이 세워졌던 단ㅇ로 천수기단 앞에느 부속된 낮은 단이 있다.
천수는 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천수기단'에서 바라본 '검단산성'
순천왜성과 직선거리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 백제시대 석성(石城)이다.
정유재란시 명나라 장군 유정(劉綎)과 도원수 권율이 이끄는 육군 3만 6000여 명이 이 성에 주둔하면서
순천왜성의 왜군을 공격하였다.
지금은 매립이 되어 육지화 되었지만 정유재란 시에는 저곳이 모두 바다였다.
명나라 해군 진린(陳璘)장군과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수군 1만 5000여 명의 병력이 순천 왜성을 공격하였다.
수군의 화포 공격에 왜성 천수기단 일부가 부서지기도 했다.
당시 전투 중 일부 조명 수군의 배가 썰물 때 미처 퇴각하지 못하고 뻘에 갇혀 왜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 명나라 전함은 선체가 낮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으나 조선 전함은 선체가 높아 왜의 공격을 막아내고 밀물이 들어올 때 온전히 퇴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