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381호. 조선시대. 여수8경 가운데 제7경. 이 사당은 이순신이 전사한 3년 뒤인 1601년(선조 34) 왕명으로 우의정 이항복(李恒福)이 현지시찰을 하고 통제사 이시언(李時言)의 주관 아래 건립, 사액(賜額)된 충무공 관련 사액사당 제1호다.
원래는 충무공 주향(主享)에 전라좌수사 의민공(毅愍公) 이억기(李億祺)가 배향되었는데, 1677년(숙종 3) 보성군수 안홍국(安弘國)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873년 증수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다시 철폐되었다가, 1947년 지방유림이 원위치에 재건하였다.
충민사 바로 곁(미니어쳐 왼쪽부분)에는 충민사의 수호사찰인 석천사(石泉寺)가 있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을 선상(船上)에까지 따라다니며 모신 승려 옥동(玉洞)이 충민사가 세워지자 이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큰 암석 밑에서 솟아나는 샘물에서 절의 이름이 유래하였다
충민사 내부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정 매년 음력 3월 10일과 9월 10일 두차례 제례를 지낸다고 한다.
사당 안에는 전라우수사 의민공 이억기 장군과 보성군수 충현공 안홍국 장군이 함께 모셔져 있다. (안홍국 : 임진왜란시 선전관으로 왕을 의주로 호종하였고 삼남의 각진을 돌아다니며 왕의 지시를 전달, 충무공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으로 공을 세웠으며 안골포해전에서 전사)
사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2개의 문을 지나야합니다. 첫번째는 외삼문인 '숭모문' 두번째는 내삼문인 '충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