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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옥사계(金德齡獄事啓)!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8-25

조회 21,674








김덕령옥사계(金德齡獄事啓)!

1596년8월, 선조수정실록에서 발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 옥에 갇혀 고문을 받고 죽었다.
김덕령이(충청도 홍산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한)
출동 명령을 받은 즉시 부대를 이끌고 길을 떠났지만, 역적이
평정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진으로 돌아왔다.  -(중략)-
형장을 수백 대나 맞느라고 다리뼈가 다 부러졌지만 태연하게
해명하면서 말과 기색을 굽히지 않았다.  단지 말하기를,
"신은 만 번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계사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3년 거상을 치르지 않고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원수를 갚으려고 부모의 정을 끊은 채 군복으로 갈아입고
무기를 들고 떨쳐 일어났습니다.  여러 해나 군사를 따라 다니면서도
조그마한 공로도 세우지 못하였으니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도리어
효성만 저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죄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만 번 죽어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신은 지금 죽음에 임하여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신이 모집한 용맹한 군사 최담령 등이
죄 없이 갇혀 있으니 죽이지 말고 써주기 바랍니다." 라고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죽었다. -(후략)-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했으나 누명을 쓰고 옥사했던 김덕령
장군이 이몽학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받고 고문 당하고 죽는
과정을 선조수정실록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온 나라가 왜적의 말발굽아래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는 전시상황에서
한 사람의 장수도 귀하게 써야하는 최고총사령관인 선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인사정책이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김덕령 장군은 죽으면서까지도 자기 부하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이렇게 죽이려고 하셨겠지요.  다행히도 약포 정탁 대감의
신구차(임금앞에 나아가 목숨을 걸고 충언이 담긴 변론요지서)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우의정이었던 정탁 대감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위한 신구차뿐만 아니라 김덕령 장군을 구명 하기 위하여 선조에게 상소
했던 [김덕령옥사계]가 최근에 발견되어 공개 되었습니다.

동인으로 영남의 거유(巨儒)인 72세의 노재상 약포 정탁 대감이 서인의
29세 호남출신 청년 장군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닥치게 될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무고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린 것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맡은바 일에 있어서는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판단력으로 바르게 실천하는
그런 용기있는 자세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조선의 선비 정신은 생명을 사랑하고 정의에 불타는 Gentlemanship으로
어떤 역경의 비지니스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전하는 것 같습니다.

세대간의 갈등, 정치적인 이해관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비용 등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난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리더십은 바로 이런
훌륭한 조상을 둔 우리의 자존감을 일깨우는데서부터 시작되는것이
아닐까요?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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