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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보고의 진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9-29

조회 21,514







귀국보고의 진실!


황윤길이 부산으로 돌아오자 일본의 정세를 시급히 보고하며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윽고 복명
(復命)할 때, 임금께서 불러 보시고 물으시니 황윤길은 그전의
말대로 대답했고, 김성일은 "신(臣)은 그러한 정세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고는, 이어 "황윤길이 인심(人心)을
동요시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중략)-
내가 김성일에게 "그대의 말은 황윤길의 말과 같지 않은데 만일에
병화가 있게 되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묻자, "나 역시
어찌 왜적이 끝내 동병(動兵)치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겠는가마는,
다만 황윤길의 말이 너무 지나쳐 중앙과 지방의 인심이 놀라 당황
할 것이므로 이를 해명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  이재호 옮김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  에서 발췌


이순신의 파워 인맥, 약포 정탁 대감의 도정서원, 서애 유성룡
대감의 병산서원, 그리고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과 그의 학맥을
이어간 학봉 김성일 선생의 종택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제가 역사 학자도 아니면서 이러한 민감한 귀국보고서를 발췌하고
토씨를 단다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학봉 김성일
종택을 둘러보고 또 지금의 비지니스 보고서를 떠올리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황윤길 정사는 서인이고 김성일
부사는 동인이라서 서로 보고가 달랐던 이유가 당파가 달랐기 때문
이라는 주장은 조선 왕조 때는 제기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일관계사학회에서 발표된 [1570년 통신사행과 귀국보고 재조명]
에서는 일제가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선의 당쟁을 과장 강조한
식민사관과 이를 이은 당쟁론적 오해와 왜곡이 만든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뭏든 학봉 김성일 종택의 안내를 받으면서 감명 깊었던것은 15대 종손
까지 면면히 내려온 선비정신과 고문서, 유품 등 자기 조상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보내는 진정한 자세를 보고 [우리 옛것을 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키고 잘 보전 한다는것,  이것은 모든 악조건을 참고 견디며 새로운 변화에
적응 하면서도 본질을 잊지않고 제대로 전달하는 것, 우리 후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아닐런지요?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갈 수 있는 것은 원칙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는 소통의 리더십이 있기 때문 입니다.
조상의 혼이 배어있는 품위있는 자존감이 있기 때문 입니다. 

보고서를 잘 쓴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나의 레포트 라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보고해야 하는지 핵심을 간파하여  브리핑 한다는 것은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열쇄가 됩니다.  컨설팅 회사가 쓴 보고서에
비싼 값을 지불하는 이유를 다 아실것 입니다.  보고자의 의견은 분명하게
밝혀야 하지만 나의 감정은 밝히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공사(公私)를 뛰어넘어 보고서로 끝나야 하니까요.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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