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770 건의 게시물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검색하기

more

이순신을 잡아올 때.....

관리자 | 2026.05.03
more

이순신을 잡아올 때.....선조 : “이순신을 잡아올 때 선전관에게 신표(信標)와 밀부(密符)를 주어서 잡아오되, 원균과 교대한 뒤에 잡아오라고 일러 보내도록 하라. 또 이순신이 만일 군사들을 거느리고 적과 대적하여 싸우고 있는 중이면잡아오기가 불편할 터이니, 싸움이 끝나고 쉬는 틈을 보아 잡아오라고 일러 보내도록 하라.”- 선조실록 (1597. 2. 6.丁卯) - 에서 발췌위의 글은 선조가 김홍미(

귀향..... (0)
관리자 | 2026.04.26
귀향1598년 11월 18일전사한 이순신의 유해(遺骸)는맨 처음 남해 충렬사 뒤편에 모셨다가11월 30일“이순신에게 증직(贈職)하고 치부(致賻)하고관(官)에서 장사를 도우라.”라는 전교를 받고장례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1599년 2월 11일고향 아산으로 유해가 들어왔을 때남녀노소 백성들이 통곡하며 뒤를
해상교통로(Sea Line of Communicat (0)
관리자 | 2026.04.19
해상교통로(Sea Line of Communications)라고 부른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거둔 해전의 의의를 살펴보면, 바다를 건너 온 원정군의 군수보급을 차단함으로써 왜군의 전투수행능력과 사기를 저하시켜 결국은 침공을 단념하게 만든 것
호남순찰사는 그것을 헐뜯는 투로 말하였다..... (0)
관리자 | 2026.04.13
호남순찰사는 그것을 헐뜯는 투로 말하였다.....1595년 8월 23일(癸亥). 맑다. 체찰사에게 갔는데, 조용히 이야기하는 말 속에 백성들을 위해서 질고를 덜어줘야겠다는 뜻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호남순찰사는 그것을 헐뜯는 투로 말하였다. 한탄스러웠다. 늦게 나는&nb
고생한 장수들에게 그 노고를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 (0)
관리자 | 2026.04.05
고생한 장수들에게 그 노고를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1596(丙辛)년 5월 5일(辛未). 맑다. 회령포 만호가 교서에 숙배를 올린 후에 여러 장수들이 모여 오기에 그 길로 들어가 앉아서 위로하고 술 네 순배를 돌렸다. 경상수사가 술이 반쯤 취하여 그에게 씨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