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693 건의 게시물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검색하기

소실된 역사 기록들! (0)
관리자 | 2012.08.27
. 소실된 역사 기록들!선조실록(1592. 7. 23. 庚辰) 춘추관(春秋館)에서 건의 하였다.“변란이 터진 이후 조정과 민간에서 기록한 문서들이 남김없이모조리 없어졌고 전하가 서쪽지방으로 떠나간 뒤로는 행차를 따라다니는 사관(史官)들이 가졌던 일기들도 거의 다 불타고못쓰게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강화의 조건으로 한강 이남의 땅을 요구한 일본 (0)
관리자 | 2012.08.20
강화의 조건으로 한강 이남의 땅을 요구한 일본 선조실록 (1594. 8. 15 庚申)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보고하였다. “신이 오늘 신흠(申欽)과 함께 명나라의 총병을 만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적의 의도는 왕으로 책봉해 줄 것과 명나라에 조공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
가등청정에게 사로잡힌 두 왕자들! (0)
관리자 | 2012.07.30
가등청정에게 사로잡힌 두 왕자들! 선조수정실록 (1592년 7월) 왜적의 장수 청정(淸正)이 북도로 쳐들어갔다. 회령 사람들이 배반하여 두 왕자를 붙잡았으며, 여러 신하들이 투항 하였다. 관북과 관남이 다 적에게 함락 되었다. (중략) 이튿날에 지방 관리인 진무(鎭撫) 국경인(鞠景仁)이 무리를 모아 가지
신뢰는 리더의 생명이다 (0)
관리자 | 2012.07.23
신뢰는 리더의 생명이다. 견내량에서 왜적을 쳐부순 장계(1592. 7. 15) - 前略 – 그래서 본도 우수사와 모이기로 약속하고, 7월4일 저녁에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였으며, 7월5일에는 서로 전략을 상의한 후, 7월6일에는 수군을 거느리고 일제히 출발하였습니다.
부활하는 수군통제영 (0)
관리자 | 2012.07.16
부활하는 수군통제영1597년10월29일(丙戌). 맑음. 새벽2시경에 첫 나팔을 불고 출항하여 목포로 향하는데 벌써부터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동풍이 약간 불었다. 목포에 이르렀다가 보화도(지금의 고하도)로 옮겨 정박하니, 서북풍을 막을 만하고 배를 감추기에 아주 적합했다. 그래서 육지로 내려 섬 안을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