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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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가. 판옥선

판옥선

조선의 최고위 관직 중 하나인 좌의정의 자리에 있던 유성룡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군사 최고 책임자인 병조판서를 겸하며 군사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이후 7년의 임진왜란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군무, 행정, 외교 등의 모든 나랏일을 총괄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판옥선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이 많은 남서부 해안에서 효율적으로 항해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그래서 배의 밑면이 편평한 평저선이었다. 판옥선은 나무못을 사용해서 판과 판 사이를 고정시켰기 때문에 일본의 배보다 탄탄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판옥선은 포가 발포될 때의 반동으로 뒤로 움직이는 힘을 흡수 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의 배들은 쇠못으로 판자를 고정시켰고 판옥선의 주재료인 소나무보다 강도가 낮은 삼나무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충격을 흡수할 수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에 참전 시에 대부분 판옥선으로 함대를 편성하였다. 판옥선은 거북선이 돌격하면 그 뒤를 따라서 일본배에 함포 공격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24척을 건조하였으며 전쟁기간 중에 더 많은 배를 건조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해군 전법인 ‘학익진’은 판옥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전술이었고, 일본 함대를 원거리에서 포사격으로 함몰시킬 수 있었다. 판옥선은 장군이 유명무실한 승전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던 셈이다.

나. 거북선

거북선


거북선은 그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다 하여 지어진 것이다. 거북선은 마치 물에 떠있는 거북이의 모습과 유사했다. 이충무공전서에 따르면, 이 시기에 쓰인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고안하고 그의 휘하 장수 중 한명이었던 나대용이 건조한 것이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거북 모양 배를 그 시기에 이미 건조하여서 한강에서 배를 띄우는 실험을 했다고 하지만, 그때의 거북선은 임진왜란시기에 쓰인 것과 다른 것으로 사료된다.


나대용은 판옥선 위에 대못을 박은 나무로 된 판자 지붕을 만들었다. 이는 배 위로 넘어와서 공격을 하는 일본군의 공격방식을 막기 위함이었다. 거북선 안에 타고 있는 선원들은 밖을 볼 수 있었으나 일본군은 안을 보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일본군은 어떻게 공격을 해야할지 혼란을 겪었다. 거북선은 두 개의 갑판이 있었고 돛과 노를 사용해서 운용하였다. 첫 번째 갑판의 아래에는 창고와 선실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포를 실었다. 또한, 전투병과 노꾼이 이곳에 탑승하였다. 배의 앞에는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용머리를 달았고 그 밑에는 도깨비 모양을 한 나무 장식이 있었다. 이것으로는 적의 배를 깼다.

거북선은 사방에서 포를 쏠 수 있었다. 용의 머리 안에도 총통이 있어 일본 함대로 돌격할 때 사용하였다. 거북선은 천자,지자,현자, 황자총통등의 다양한 종류의 총통을 실을 수 있었으며 꼬리에는 하나의 포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3척을 건조하였으며 사천포 해전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 해전에서 거북선은 함대의 앞으로 나아가서 일본배들을 먼저 공격하였다. 거북선이 먼저 돌진 하여 일본 함대의 전열을 흐트러 뜨린 후에는 남아있던 배들이 진격하였다. 해전시에 거북선의 주요 목표물은 주로 일본군 사령관이 탔던 배인 아다케선이었다.

화약무기


약 1104년경 고려왕조 시기에 처음으로 화약병기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최무선이 화약을 만드는 법을 배워와 화통도감을 1377년에 설치한 이후였다. 조선 또한 이를 계승하여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총통, 탄환등을 개발하였다. 이렇게 개발된 화약병기들은 조선함대가 일본함대를 무찌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가. 총통

임진왜란 시기에는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 이 네 가지 총통이 주로 쓰였다. 총통들의 이름은 사격능력과 발포력에 따라서 이름을 달리 지은 것이었다. 총통들은 거북선과 판옥선에 실려 함포전에 쓰였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이 1592년에 수군 기지를 돌면서 총통사격을 지켜본 것으로 나온다. 또한 장군은 거북선에 총통을 싣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서 실험을 했다고 기록하였다.

나. 총통의 비교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최대사정거리 1.125m 1.000m 1,000m or 1,875m 1,378m
구경 118~130mm 105mm 60~75mm 40mm
길이 130~136cm 89~89.5cm 79~83.8cm 50.4cm

천자총통

1) 천자총통
천은 하늘을 뜻한다. 천자총통은 가장 큰 총통이었다. 주로 대장군전을 쏘아서 일본 배에 구멍을 내는데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탄환과 400개의 조란환을 한꺼번에 쏠 수 있었다. 조란환은 산란탄의 일종으로 작은 탄환을 일시에 발사하는 것이었다.


지자총통


2) 지자총통
지는 땅을 뜻한다. 지자총통은 두 번째로 컸으며 대장군전보다 작은 장군전과 200여개의 조란환을 한번에 발포할 수 있었다.


3) 현자총통
현은 검은색을 뜻한다. 현자총통은 세 번째로 컸으며 차대전과 100개의 조란환을 쏠 수 있었다.

황자총통

4) 황자총통
황은 노란색을 뜻한다. 황자총통은 가장 작은 총통이었으며 피령차정전과 40개의 조란환을 발사 할 수
있었다. 총통제작 장인인 부기가 만든 실제로 쓰였던 것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 886호이다.


다. 조총

1) 정철총통
난중일기의 내용에 따르면 정철총통은 이순신 장군 휘하 장수인 정사준이 발명했다고 한다. 정사준은 일본의 조총과 조선의 승자총을 비교분석하여서 이것을 발명했다고 한다. 정철총통의 주재료는 정철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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